삶의 양식/CoramDeo_호세아

[코람데오] 10월17일(월) - 호세아 1장 1절 '영적인 스승'

TR.H.Lee 2016. 10. 17. 23:20

             

              호세아 1장 1절 / 영적인 스승


[묵상]



'주님께서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주신 말씀이다. 때는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왕이 이어서 유다를 다스리고,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 왕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이다.'(호 1:1, 새번역)



이 한 구절을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웃시야왕(A)과 그의 아들 요담(B)과 요담의 아들 아하스(C)와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D)가 유다를 다스리던 때이다. 그 때에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은(Ⅱ) 이스라엘의 왕이었다. 더 자세히 말해보자면 웃시야(A)의 왕 부친 아마샤왕 재위 15년에 이스라엘의 왕이 여로보암(Ⅱ)이었고(왕하 14:23) 웃시야(A)왕 37년에(그때가 여로보암 재위 41년이다)에 그의(여로보암) 통치는 끝이난다. 참고로 웃시야왕의 이름의 뜻은 '야훼는 나의 힘'이다.


웃시야 왕 : 영적인 스승을 잃은 왕 - 역대하 26장


그는 16세에 왕이 되어서 52년간 예루살렘을 다스린다.(대하 26:3) 웃시야 왕은 그의 부친 아마샤처럼 야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옳은 일을 행하였다. 하나님을 섬겼고, 블레셋 백성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했다. 암몬 사람은 웃시야 왕에게 조공까지 바쳤으며, 웃시야의 이름은 이집트(애굽) 국경까지 퍼졌다. 웃시야는 망대와 요새들을 건설했고 샘(물)도 많이 팠다. 이로 인해 광야에 가축이 많아졌고 농사짓기에 비옥한 땅이 되었다. 훈련된 군인들과 막강한 무기를 갖춘 용맹한 군대도 조직이 되었다. 예루살렘 기술자들을 통해 각종 기구도 만들었다. 그리하여 웃시야 왕의 이름은 멀리까지 퍼졌다. 웃시야 왕이 이렇게 강대해진 것은 '그가 하나님의 많은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강한 왕이 되었습니다.'(대하 16:15b, 새번역)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곁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스가랴가 있었다.


'웃시야는 스가랴가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께 복종했습니다. 스가랴는 웃시야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웃시야가 하나님을 섬기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웃시야의 하는 일을 잘 되게 해 주셨습니다.'(대하 26:5, 새번역)


스가랴는 웃시야 왕의 곁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 분께 복종하는 법을 가르쳤다. 지도자가 영적으로 깨어 있을 때 한 나라가 평안한 것을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영적인 지도자가 없다면 그 성은 근심에 쌓이게 된다.


'지도자가 없으면 백성이 망하지만, 참모가 많으면 평안을 누린다.'(잠 11:14, 새번역)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충언자가 많으면 평안을 누린다'라고 번역이 되어 있다. 바꾸어 말하면 영적으로 깨어있는 지도자가 없다면 근심이 많아지게 된다. 이것이 웃시야에게 현실로 다가왔다.
스가랴가 죽은 후 웃시야는 교만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때문에 망하게 된다.(대하 27:16) 그는 야훼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고, 야훼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을 직접 피우려고 하였다. 야훼의 제단에 향을 피우는 일은 제사장의 직무였다. 이것을 왕이 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행동이고, - 제사장이 해야 할 일을 왕이 행한 일로 왕권에서 쫓겨난 사울을 기억해보라(삼상 13장) - 이방 신처럼 사람의 소견에 좋을 대로 하나님을 신들 중 하나로 여기는 풍습이다.


야훼를 섬기는 용감한 제사장 80명이 왕의 뒤를 따라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들은(제사장들) 웃시야 왕의 하는 일 즉 제사장에게만 허락된 일을 그치라고 간언한다. 한 명도 아닌 열 명도 아닌 80명이 왕을 향해 하나님께 죄를 범하지 말라고 말리고 있다. 웃시야 왕은 분향단 에서 제사장들을 향해 분노를 하게 되고, 문둥병이 발하게 된다. - 웃시야 왕 자신이 문둥병에 걸리게 된다. -  하나님께서 웃시야 왕을 치신 것이다. 결국 웃시야 왕은 성전에서 쫓겨나고 죽을 때까지 병에 걸려 살게 된다.(대하 26:17-21)


'왕위에 오른 사람은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 보관되어 있는 이 율법책을 두루마리에 옮겨 적어, 평생 자기 옆에 두고 읽으면서, 자기를 택하신 주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씀과 규례를 성심껏 어김없이 지켜야 합니다. 마음이 교만해져서 자기 겨레를 업신여기는 일도 없고, 그 계명을 떠나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도 않으면, 그와 그의 자손이 오래도록 이스라엘의 왕위에 앉게 될 것입니다.'(신 17:18-20, 새번역)


웃시야가 영적인 스승 스가랴를 잃었을 때 더 이상 그의 곁에서 하나님의 말씀(율법책)을 읽어줄 영적인 사람이 없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기 시작할 때 그는 마음은 교만이 자리를 잡았다. 왕이 교만해지지 않기 위해 율법책을 평생 곁에 두어서 읽고, 주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워야 하며, 율법의 모든 말씀과 규례를 성심껏 어김없이 지켜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 이었다. -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을 지배할 때 교만한 마음을 누를 수 있다. -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가르침을 받는 것은 내 곁에 영적인 스승을 두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 땅위에서 열 두 사도들의 영적인 스승이셨다. 그가 하늘로 가신 후 성령 곧 보혜사가 사도들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의 스승이 되셨다.(요 14:16-17, 26)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또한 우리가 영적인 스승이 될 것을 명령하셨다.(마 28:18-20) 영적인 스승이 되기 위해서는 나도(우리도) 누군가의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오늘 본문에 거론 된 웃시야 왕은 그의 아버지 아마샤를 본받으려 할 때 그 지침을 제시한 스승이 스가랴였다. 그는(스가랴) 웃시야 왕이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고 두려워해야(=경외敬畏) 하는지를 가르쳤다. 그 가르침은 웃시야 왕의 삶 전 영역에서 나타났다. 그리고 하나님은 웃시야 왕을 도우시고 그를 강하게 했다. 그러나 영적인 스승이 죽고 나서 웃시야 왕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한 가지 질문을 해보면, '스가랴의 가르침은 실패작인가?' 그렇지 않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했고 그 순종함을 웃시야 왕에게 가르쳤다. 그리고 웃시야 왕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왕이 되었고 개인의 삶과 왕국은 강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왜 웃시야 왕은 스가랴가 죽은 후에 신앙을 저버렸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우리는) 혼자서 모든 것을 해나갈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혼자 한다는 것은 교만을 허용하는 것이다. 틈새시장을 내어주는 것이다. 누군가가 나를 견제해 주지 않으면 스스로를 견제할 수 없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늘 자신과의 문제에 부딪히면서 싸우고 고민하고 절망하며 일어선다. 그 과정 속에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한다. 혼자일 수 없다. 혼자가 될 때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을 우리는 본다.


자살로 유명한 한 다리에 이런 글귀가 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이 짧은 글귀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 이후 자살률이 줄어든 것을 본다면 사람은 혼자일 때 스스로를 포기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성경은 '어떤 사람들의 습관처럼, 우리는 모이기를 그만하지 말고, 서로 격려하여 그 날이 가까워 오는 것을 볼수록 더욱 힘써 모입시다.'(히 10:25, 새번역) 라고 권면한다. 누군가가 나와 함께 한다는 것을 느끼고 깨달을 때 소망의 불씨는 힘을 얻게 된다. 웃시야 왕에게 간언해 줄 참 영적인 스승이 없다는 것이 그에게 큰 위기였고 성경은 이 사실을 나에게 가르친다.


내 영적인 스승은 누구인가? 나는 누구를 영적인 스승으로 삼으려는 것일까? 교회는 수년 동안 이런 관계를 맨토와 맨티 관계로 정의를 내렸다. 무엇으로 하든 중요한 것은 나에게 진정으로 간언해줄 수 있는 영적으로 깨어있는 사람일 것이다. 어쩌면 중요한 것을 놓치면서 영적으로 문제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교만이다. 내가 아무리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나를 점검해주고 못한다면 나는 위태한 삶을 사는 것이다. 성경에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라고 나와 있다.(롬 8:28) 사도바울은 그의 서신서를 통해 항상 동역 자들과 함께 했었음을 보여주는데, 이는 하나님의 속성을 반영해준다. 독불장군 식으로 혼자 하는 것은 내 마음에 교만을 허용하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통해 내 자신을 점검해야 한다.


웃시야 왕. 그의 부친처럼 하나님 앞에 옳게 살려고 결심한 왕이었다. 그리고 그는 정말로 하나님을 섬겼고 하나님께 복을 받아 유다의 강대함을 누렸다. 민족을 괴롭히던 블레셋을 복종시키고 암몬의 조공을 받아냈다. 이스라엘을 노예로 삼던 이집트(애굽)까지 그의 명성은 드높아졌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명성은 오래가지 못했다. 영적인 스승 스가랴가 죽었을 때 자신에게 간언해 줄 지도자를 잃은 웃시야는 스스로의 교만 앞에 무너지고 말았다. 이것은 내 이야기가 되지 않아야 한다.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나 혼자서 잘 한다고 추켜세운다면 말이다. - 사람들은 웃시야 왕의 빛나는 업적을 칭송할지도 모른다. 그의 부귀와 영광을 추모할지도 모른다. 이는 작금의 모습과도 일치하기 때문이다. 영적으로 깨어 있지 않으면 본질보다는 보이는 외적인 부분을 그리워하는 어리석은 자, 무늬만 멋지고 예쁜 기독교인 될 수 있다. 이것이 '나'(me)일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



[기도]



하나님 웃시야왕을 통해 내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바라봅니다. 내가 교만해질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고 함께하지 못하는 제 모습은 여전히 교만합니다. 나 혼자 잘난 신앙입니다. 이것이 교만임을 고백합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동역하지 않았던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지 않았던 것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에게 멘토 H가 있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H가 직장으로 인하여 곧 타국으로 갑니다. H에게도 저에게도 깨어있는 영적인 맨토를 허락해 주십시오. 이 세상은 혼자서 살 수 없음을 배웠습니다. 멀리 있어도 서로를 위해 기도하게 하시고 주님앞에 겸손하게 하여 주십시오. 또한 주님께서 날마다 저의 교만을 보게 하시고 나로 교만앞에 숨지 말게 하여주십시오. 하남을 섬기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신실한 맨토를 만나게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