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iet TimeㅣAug. 13. 2024ㅣ여호수아 2장 (1-24)
'여호와께서 이 땅을 그대들에게 주신 것을 내가 알고 있소. 그대들에 대한 공포가 우리를 뒤덮었고 이 땅에 있는 모든 백성이 그대들 때문에 마음이 녹아내리고 있소. 이는 그대들이 애굽을 떠날 때에 여호와께서 그대들 앞에서 홍해의 물을 말리신 일과 그대들이 요단 강 동쪽에 있는 아모리족의 두 왕 시혼과 옥을 섬멸한 일을 우리가 들었기 때문이오. 우리는 그 소문을 듣자 마음이 녹았고 그대들로 인하여 이제 아예 얼이 빠져 버렸으니 이는 여호와 그대들의 하나님이 우로 하늘과 아래로 온 땅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오' (수 2:9-11, 라합의 증언 - 북한어성경)
'참으로 여호와께서 그 온 땅을 우리의 손에 넘기셨으므로 우리로 인해서 그 땅 온 백성의 마음이 녹아내리고 있습니다.'
(수 2:24, 두 정탐군의 보고 - 북한어성경)
'우리가 어서 올라가 그 땅을 차지합시다. 우리는 그 일을 해낼 수 있습니다.' (민 13:30, 갈렙 - 북한어 성경)
'우리가 두루 다니며 두루 살핀 그 땅은 매우 좋은 땅이오. 여호와께서 우리를 사랑하실진대 우리를 그 땅에 들여보내실 것이며 마침내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실 것이오. 그곳은 젖과 꿀이 흘러 넘치는 땅이오. 실로 그 땅으 ㅣ백성을 두려워하지 마시오. 그들의 수호자는 이미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니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시오.' (민 14:7-9, 여호수아, 갈렙 - 북한어성경)
세상은 하나님을 알고 있다.
하나님의 소문을 들었으며 그 소문으로 세상은 망연자실해한다.
여기 라합과 두 정탐군 그리고 여호수아와 갈렙의 증언은 인상적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 그리고 행하실 일에 대해 초점을 맞춘다.
이와 반대로 민수기 13-14장에 나오는 11명의 정탐군들의 증언은 대조적이다.
이들은 현재의 상황과 보도에 초점을 맞춘다.
라합과 두 정탐군,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이 분명히 이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셨다는 것에 주목했고,
11명의 정탐군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땅에 거주하는 정착민들의 전력(戰力)과 용맹(勇猛)에 초점을 둔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홍해를 마른땅처럼 건너게 하셨고
이스라엘을 대적한 아모리 왕과 바산 왕을 전멸시키셨다.
라합은 이 사실을 보지는 못했지만 소문으로 들었다.
라합은 하나님을 선택했고 여리고 동족들은 하나님과의 전쟁을 선택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땅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풍요로운 땅이었으며,
그들이 아무리 강하고 용맹할지라도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믿고 변하지 않는 마음으로 믿음을 가지고 그 땅을 취하자고 했다.
두 정탐군 역시 그 땅을 돌아보고 난 후
그 땅 사람들이 지금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때문에
얼마나 무서워하고 두려워떨고 있는지를 보았고 증언했다.
세상은 하나님을 안다.
'너는 하나님이 한 분이라고 믿느냐? 잘하고 있거니와 귀신들도 그렇게 믿고 떤다.' (약 2:19 - 북한어성경)
'그런데 귀신 들린 사람들이 갑자기 외쳐 말하였다. "하나님의 아들이여, 당신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때가 되기도 전에, 우리를 괴롭히려고 여기 오셨습니까?" 하고 외쳤다.' (마 8:29 - 현대인의성경)
'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부탁드립니다. 제발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하고 외쳤다.' (막 5:6 - 현대인의성경)
'그가 예수님을 보자 소리지르며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부탁드립니다. 제발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하고 외쳤다.' (눅 8:28 - 현대인의성경)
'여종이 바울과 우리를 따라오면서 큰 소리로 "이 사람들은 여러분에게 구원의 길을 전하고 있는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종들이오." 하고 외쳤다.' (행 16:17 - 현대인의성경)
'그러자 악한 귀신이 "나는 예수님도 알고 바울도 아는데 도대체 너희는 누구냐?" 하고 대답하였다.' (행 19:15 - 현대인의성경)
악한 영들도(귀신, 마귀, 사단) 하나님이 한 분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누구인지 안다.
라합과 여리고의 사람들은 눈으로 보지 못했지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홍해물을 말리시고 그곳을 마른땅처럼 건너게 하신것과, 그것을 대적하다가 죽은 애굽의 용맹한 전사들의 허무한 죽음에 대해 소문으로 들었다. 또 이스라엘을 대적한(하나님을 대적함)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왕 옥을 치신 일을 들었다(민 21:21-35). 그들은 정신을 잃고 말았다(수 2:11).
지금의 상황과 한계를 바라본 11명의 정탐군들과
그럴지라도 주권자가 되시는 참 하나님을 바라본 여호수아와 갈렙, 두 명의 정탐군이 있다.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바라본 라합과 여리고의 사람들이 있다.
나는 어느편에 서야 하는가?
냉정한 판단력은 현실을 직관하게 한다.
"우리는 그 나라와 민족들을 공격할 수 없어"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강해"
"그들의 키는 거인인걸? 우리는 메뚜기와 같아. 그들이 밟으면 그냥 다 쓰러질거야"
"그들과 싸운다고? 그들이 우리를 삼켜버릴거야."
"우리가 왜 애굽에서 나왔을까? 차라리 거기서 죽었더라면..."
"하나님은 왜 우리와 우리 가족을 여기서 죽게 하는걸까?"
현실을 직관하면 정확한 방향성과 해결책을 보여준다.
올바른 정신력을 갖게 한다. 그리고 믿음을(하나님을) 왜곡시킨다.
유물론과 결정론은 손으로 만지고 보여지는 것이 참이며,
인문주의와 신자유주의는 학문적인 증명이 되지 않으면 믿지 않았다.
믿음은 그것을 뛰어넘는다.
믿음은 한계에 얽메이지 않는다.
믿음은 세상의 가치와 법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믿음은 세상과 논리의 공격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에 대해서 확신하는 것입니다. 또한 보이지 않지만 그것이 사실임을 분명히 아는 것입니다.' (히 11:1 - 읽기쉬운성경)
'믿음이 없이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는 그가 계시다는 것과 그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진정으로 믿어야 합니다.' (히 11:6 - 쉬운성경)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이집트)에서 하나님의 큰 기적을 보았다.
그들은 어느 한 편을 선택해야 했다.
라합은 그것을 직접 보지 못했고 소문으로만 들었다.
그녀는 하나님을 선택했다.
나는 누구를 선택해야 할까?
아삽의 교훈을 보면 좀 더 분명하다. (시편 78: 43-55 - 북한어성경)
'그 날에 그분께서 애굽에서는 징조를 소안 들판에서는 이적을 나타내사
그들의 강과 시내를 피로 변화시키시어 그들로 마실 수 없게 하셨고
등에 떼를 보내셔서 그들을 물게 하셨으며 개구리들로 그들을 해치게 하셨다.
또 그들의 소출을 황충에게 그들이 로동한 작물을 메뚜기에게 내주셨으며
그들의 포도나무를 우박으로 그들의 돌무화과나무를 된서리로 때리셨으며
그들의 가축떼를 우박으로 치시고 그들의 양떼를 번개로 치셨다.
그분께서 그들에게 분노의 불 곧 진노와 저주와 재난을 내리셨으며
재앙의 사자들을 그들에게 보내셨다.
그분께서 분노의 길을 내사 그들의 목숨을 죽음에서 건지시지 않으시고
그들의 생명을 돌림병에 내어주셨다.
그분께서 애굽에서 모든 맏이를 치셨으며
함의 천막에서 그들 힘의 첫 열매를 치셨다.
그러나 자신의 백성은 양떼처럼 이끄시고 광야에서 그들을 가축 떼처럼 돌보셨으며
그들을 안전하게 인도하셨으니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았으나
그들의 대적들은 바다 속에 침몰되었다.
그분께서 그들을 거룩한 지역 곧 그분의 오른손으로 취하신 산으로 들이셨고
그들의 면전에서 뭇 민족을 흩으셨으며 줄로 재어 저희에게 물림가산을 분배하시고
이스라엘의 지파들로 자기 천막에서 살게 하셨다.'
나는 현실직관에 최선을 다했다. 정확한 사실과 평가에 주목했다.
나는 논리적인 해법으로 중용의 도를 배워야 하는 것을 최선으로 삼았다.
하나님을 멀리 두고 있었다. 나는 세상의 잣대로 믿음을 제한했다.
그러나 세상은 하나님의 권세에 놀라고 또 놀라고 있다.
세상은 겉으로는 자신들의 가치가 뛰어나다고 증명하지만 실상은 속으로 곪아터지고 있었다.
"그대들의 공포가 뒤덮었소"
"이땅 백성이 그대들과 그대들의 하나님때문에 얼이 빠졌소"
"하나님이 하신 일 때문에 우리가 기력을 잃었소"
라합은 하나님의 주권에 주목했고 그것에 굴복했다.
나는 여전히 목을 곧게했으며 11명의 정탐군들처럼 눈에 보이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 얼마나 바보같은 행동이며 멍청한 선택이었는가.
하나님을 왜곡했고, 하나님이 하신일을 스스로 버렸으며
현실의 늪과 세상의 한계 안에 나를 가두고 분노하고 힘겨워했다.
그것이 나였고... 나였다니... 나따위가 어떻게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될수 있을까?
하나님 저의 죄의 본성과 믿음 없음을 용서해주세요.
동성애가 득세하고
하나님과 교회를 멸시하는 사람들과 미디어(뉴스)가 득세해도
나는 11명의 정탐군처럼 행동해서는 안되었다.
주변의 눈치를 보고 스스로를 메뚜기처럼 행동해서는 안되었다.
실상은 동성애, 이단, 사이비, 하나님을 반대하는 소리와 세력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님의 역사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들의 반대와 목소리의 크기는 하나님 권세에 대한 두려움의 비례였다.
그들은 겉으로만 강한척할 뿐... 속으로는 곪아가고 있다.
'그리고 몸은 죽일 수 있으나 령혼은 죽일 수 없는 사람들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 오히려 령혼과 육신을 모두 게헨나에서 멸할 분을 너희는 더 두려워하라.' (마10:28 - 북한어성경)
세상은 교회의 선한 일을 달갑게 보지 않는다.
하나님의 백성(자녀)이 선한 길에 서는 것을 싫어한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를 하나님과 구원자로 믿는 믿음의 사람들이
기도하고 찬양하는 것을 몹시도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수천년동안 기독교만이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기 때문이다.
진화론이 훌륭하고 탁월한 논리의 학문일지라도
학자들은 여전히 창조론이 옳다고 여긴다. 그것은 부인할수 없는 진리이다.
세상의 논리와 가치는 인간의 본성을 자꾸 바꾸려하고 있으며
언젠가는 그것이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겨냥한 화살과 칼이라는 것을 애써 숨기고 있다.
성경은 구원의 길을 제시하고 이땅의 법과 질서를 세운다.
하지만 세상의 논리와 학문을 주장하면 할수록
질서는 파괴되고 선한것의 절대기준은 무너진다. 이것을 세상은 알고 있다.
현실직관에 살아온 저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여호수아, 갈렙 그리고 라합의 용기와 믿음을 따라 살게 하여 주십시오.
내 안에 선한 영을 창조하시고 믿음의 길을 걷도록 용기와 은혜를 주십시오.
성령님 늘 함께 하셔서 저를 훈계하시고 책망하셔서 하나님의 주권을 늘 보며 고백하게 하여 주십시오.
하나님은 나의 보호자이시고 나의 구원자입니다.
나에게 놀라운 일을 행하셨습니다.
아멘!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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