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양식/Living Life (경건의 시간)

[R-GOD] 누가복음 20장 38절

TR.H.Lee 2023. 4. 15. 15:06

 

〈누가복음 20장 38절〉 - 개역개정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공관복음서에 등장한다.(마 22:32, 막 12:27, 눅 20:38)

개역한글버전에서는 '산 자의 하나님'(the God of the living)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말씀이 오래도록 나에게는 근심이 되었었다.

아브라함·이삭·야곱은 이미 죽었는데, '산 자의 하나님'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영어에 분명 'of the living'이라고 나와있는데도

개역한글의 '산 자의 하나님'에만 집중을 했었다.

그리고 개역개정이 나오면서 누가복음에는 충실한 해석으로

무지와 아집에 갇힌 나를 꺼내주었다.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He is not the God of the dead, but of the living, for to him all are alive.(눅 20:38, NIV)

 

'all are alive'의 'all'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뿐만 아니라

과거에 현실적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무덤에 묻힌 모든 사람들을 뜻한다.

 

사람의 '죽음'과 '살아있음'은 사람의 관점이다.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모든 사람이 여전히 하나님 앞에 살아있다.

 

-예수님은 회당장의 딸이 죽었을 때, 사람들은 이미 죽었다고 말했고, 예수님은 '잔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녀에게 살아있는 사람으로 대하셨고, 그녀는 살아났다(마 9:18~26, 막 5:35~43, 눅 8:41~56).

-예수님은 과부의 아들이 죽었을때, 죽은 자에게 말씀(명령)하셨고, 죽은 청년은 살아났다(눅 7:14,15).

-부자가 재물을 쌓고 즐거워 할때, 그의 영혼을 찾는 것은 부자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다(눅 12:20).

-나사로와 부자가 죽었을때,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었고, 부자는 음부에서 고통을 받았다(눅 16:22,23).

-나사로가 죽어 무덤에 갇혔을 때, 예수님은 그에게 '나오라'고 명령하셨고, 죽은 나사로가 살아났다(요 11:38~44).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을 때, 무덤들이 열리고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났다(마 27:52),

-예수님이 부활 하신 후에는 죽은 자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였다(마 27:53).

-바울은 유두고가 죽었을 때, 그에게 '생명이 있다'고 말했고, 유두고는 살아났다(행 20:9-12).

-엘리야는 사르밧 과부의 아들이 죽었을 때,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께서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과부의 아들을 살리셨다(왕상 17:17~23).

-엘리사는 수넴 여인의 아들이 죽었을 때, 하나님께 기도했고, 아이는 살아났다(왕하 4:18~37).

-에스겔은 하나님의 말씀대로(명령대로) 마른 뼈들에게 대언하였고,

 뼈들이 서로 연결이 되고,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고, 가죽이 덮혔다.

 그리고 에스겔이 생기에 대하여 대언했을 때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갔고,

 그들이 곧 살아나서 큰 군대가 되었다(겔 37:1-10).

이 말씀들은 사람의 주인이 곧 하나님이시며, 사람을 만드신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증언한다.

그 사람은 육체뿐만 아니라 영혼도 포함한다.

 

사람이 죽었을 때, 사람편에서는 죽은 것이다.

호흡이 끊어지고, 더이상 움직이지 않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몸은 굳어지고, 피부와 살은 썩어간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실때 여전히 사람은 사람이며,

육체가 썩을 뿐, 영혼은 하나님께로 간다.

 

예수님은 사람의 죽음 이후,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온다고 하셨다(요 5:29).

 

바울은

죄의 종은 사망에 이르고, 순종의 종은 의에 이른다고 하였다(롬 6:16)

이것은 죄의 삯은 사망이고, 하나님의 은사는 예수님 안에서의 영생(생명과 평안)이다(롬 7:23, 롬 8:6).

죄를 통해서 사망(죽음)이 들어왔다.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않음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되었고'(롬 5:19)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해 사망이 왕 노릇하였다'(롬 5:17).

또한 이 죄의 삯인 '사망'은 '하나님의 진노와 분노'다(롬 2:8,9)

예수님이 말씀하신 '심판의 부활'이란 표현이 여기에 해당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었고, 살아나셨다.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이 데려 가셨다(창 5:24).

엘리야는 회오리바람이 하늘로 데려갔다(왕하 2:11).

그리고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다(히 9:27).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다.

세상과 우주를 만드셨고, 사람을 만드셨다.

시편 기자는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신묘막측'이라고 고백했다(시 139:14).

('내가 있다는 놀라움, 하신 일의 놀라움, 이 모든 신비들' -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이 보실 때 사람은 육체적으로 죽었어도 여전히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살아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죽은 사람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의 하나님이시다.'(막 12:27 - 현대이의 성경)

'모든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살고 있다.'(눅 20:38 -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에게는 육체적으로 살아있든, 죽어있든, 모든 사람이 살아있는 것이다)

 

부활 후 우리의 관계는 이 땅에서처럼 혈연과 지연의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반증한다.

그 날에는(부활 후), '결혼도 없으며, 하늘의 천사들과 같다'(눅 12:25)

 

하나님이 살아있는 사람의 하나님이라는 이 사실은 나에게 큰 위로가 된다.

그것은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며

세상과 만물과 육체와영혼의 주인이시며

육체의 죽음 이전과 이후에도 사람은 여전히 하나님과의 관계안에 있다.

이것은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며, 항상 존재하신다(Realism).

그래서 세상은 결코 하나님의 백성을 어찌할 수 없다.

세상의 그릇과 지식으로 하나님을 담을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을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우리는)

육체는 죽여도, 영혼을 죽이지 못하는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고

영혼과 육체 모두를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마 10:28).

 

아멘.